유용기(시인/한국문학세상)
파랗게 질린 채 문 앞에 서있는 노을
아무런 기척 들리지 않아도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멍한 가슴속에
내려앉는 아픔을 참아야 한다.
골 깊게 그려졌던 사랑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상처라면
가을 찬비로 삭일 수 없을까, 그땐 풀잎에
이슬 내리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을
끝내 자라지 못한 성장을 멈춰선 뜨거운
열망과 고독이 타들어 가는 갈증에
참아 던 삶의 이유마저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하기에 입술을 깨물어보지만
아주 조금씩 말라가는 가을의 목마름이
가만히 문을 열 듯 들어서는 목구멍 속으로
타들어 가는 아픔이 있다 하여도 끝내는
함께해야 하기에 조용히 가을밤의 문을 잠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