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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06 10:18
어머니와 장마
 글쓴이 : 이성원
조회 : 544  

어머니와 장마

밤새도록 장대비가 내리더니 그 아침에도 그 낮에도 멈출 줄 모릅니다
어머니가 보이질 않습니다.
아침도 거르신 채 저 비를 다 맞으며 어디를 가셨는지, 아무리 집 안팎을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하늘에는 짙은 먹구름, 비는 몇 발자국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쏟아붓습니다저리 비가 오면 냇물이 넘칠 텐데, 그러다 우리 논이라도 덮치면 온통 물바다가 돼 버릴 것이기에 걱정이 앞섭니다
너무도 쏟아지는 비에 우산은 살이 부러진 채 세찬 바람에 가눌 수가 없고, 저 멀리서는 큰 냇물 소리가 들려옵니다신작로를 지나 저 아래 논으로 가는 하늘에는 비구름과 먹구름이 가득해 세상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저기 앞에서 누군가 그 빗속을 걸어옵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비가 쏟아집니다. 가까이 가보니 셋째 누나였습니다.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길인 듯합니다.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지나쳐 집이 있는 방향으로 가버렸습니다. 멍하니 누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걸었습니다발걸음을 재촉하여 우리 논으로 향하는 내 고무신 속엔 물이 가득 차 질퍽거립니다

우리 논이 보입니다. 논엔 물이 가득 차 거대한 호수 같아 보입니다. 조그마한 물 도랑에도 세찬 물결이 풀들을 쓸어가려는 듯 하류를 향해 마구 내달음질을 합니다. 그럴 때는 물로 가득 차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섭습니다. 이미 물로 가득 찬 논들은 물을 쏟아낼 곳이 없어 보입니다. 더는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 줄 땅이 없어 보입니다.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터졌습니다. 건너 논둑이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거대하고 무섭도록 야멸차게 돌진해 오는 물바다는 굴곡이 있는 곳을 스칠 때마다 귀퉁이에 붙어있던 논들을 휴지조각처럼 쫙쫙 찢으며 하류로 세차게 돌진합니다.
그러다, 위쪽 논 모퉁이를 치고는 우리 논을 향해 맹렬히 달려옵니다순식간에 쫙쫙 찢겨 나가고 뚝뚝 떨어져 나갑니다. 마치 어린애들이 장난으로 공책을 찢듯이 말입니다.
평상시에는 겨우 발목을 넘는 물 깊이이고, 흐르는 물의 폭이 넓어 봐야 십여 미터이던 것이, 큰비만 오면 냇물의 높이가 삼사 미터가 되고 폭이 칠팔십여 미터나 되니, 그 거대한 물살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 논둑에 누가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도 있었습니다. 비 속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는 어깨가 들썩이도록 흐느끼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
내 새끼들, 내 자석들'

사실 그 논은 삼사 년 전 큰 홍수로 약 한 마지기 정도가 떠내려가서 일 년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나들을 비롯해 온 가족이 다 같이 바닥의 큰 돌부터 다지고 중간 돌, 작은 , 그 위로 흙을 채우고 물을 가둬 다시 논을 만들었던 곳입니다. 형은 부산에서 하던 일도 다 접고 내려와 모든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큰누나는 시집가기 직전까지 너무 고생을 많이 한 탓에 행여 시집가서 애라도 못 낳을까 봐 어머니는 얼마나 노심초사하셨는지 모릅니다손발이 셀 수 없이 돌에 찍혔고 무거운 돌들을 손수레에 싣고 자갈밭을 반년 이상 끌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그렇게 애지중지하여 만들어 놓았던 논이 또다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으니 어머니의 심정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년은 어머니를 부축하여 일어나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습니다눈물로 얼룩진 얼굴엔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장마는 그렇게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망가진 논을 다시 복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큰비가 오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 버릴 테니까요
그해 가을 추수가 끝나고 면사무소 주관으로 떠내려간 큰 냇가 양쪽에 제방을 쌓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 논은 다시 복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포기를 하고 떠내려간 그 선으로 제방을 쌓았습니다. 반년 이상의 고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마가 그렇게 쓸어가 버렸습니다

아마도 중학교 2학년, 그 해 여름의 일이었을 겁니다그로부터 2년 뒤 어머니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쉰넷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훗날 그 아픔의 크기가 얼마가 될지 그때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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