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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06 18:38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글쓴이 : 김병철
조회 : 493  

  최근 어떤 친구가 내 개인 카카오톡으로 <10년 동안 65세 이상 노인의 걸음 수와 운동 효과를 측정한 결과>라는 자료를 보내왔다. 그 자료에 의하면 하루 4천 보를 걸은 사람은 우울증이 없어지고, 5천 보를 걸은 사람은 치매·심장질환이나 뇌졸중을 예방하고, 7천 보를 걸은 사람은 골다공증과 암을 예방하고, 8천 보를 걸은 사람은 고혈압과 당뇨를 예방하고, 1만 보를 걸은 사람은 대사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걷기만큼 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다. 요즈음 만나는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대부분이 건강에 대한 것임을 볼 때 나도 이제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친구들 경험담에 의하면, 나이 들어 가장 위험한 것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를 만나 비록 가벼운 것일지라도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 그 원인이 된 병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병으로 인하여 침대에 누워있음으로 인해 걷지 못해 신체 이곳저곳의 근육이 망가지고, 끝내는 걷기조차 힘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하루 1만 보 이상을 반드시 걸어야 건강해진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하루 1만 보를 걷는다는 것이 간단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일단 걸어보면 알 수 있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1시간 동안 열심히 걸으면 약 6천 몇백 보 남짓이다. 1만 보를 채우려면 적어도 1시간 30분 이상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한때 경제적 동물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일본인들은 이런 걷기를 일상생활에 접목하기 위하여 만보기라는 측정기를 발명하여 상품화했다. 나도 한때 그런 만보기를 허리띠에 차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은 누구나 원한다면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만보기 앱을 무료로 다운로드하여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다. 나도 스마트폰에 만보기 앱을 다운로드하여 매일 걸음 수를 확인하고 있다. 가능한 한 하루에 1만 보 이상은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어떤 의사 선생이 걷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아주 극단적인 말까지 하는 걸 보면 걸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사실 내가 걷는 것에 대해 최근 남다른 신경을 쓰게 된 이유는 나의 건강보다 손자 김승우 때문이다. 적령기를 놓치고 늦게 결혼한 아들이 마흔이 넘어 어렵게 우리 부부에게 안겨준 손자가 돌이 지나도 제대로 걷질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 누구네 손자는 생후 10개월째부터 걸었다느니 누구네 손녀는 돌이 될 때쯤 아예 뛰어다녔다느니 등 말을 들을 때면 내 손자는 첫 돌이 지났는데도 걸을 생각은 아예 없고 무릎을 세워 두 발로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배로 밀고 다니는 모습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나쁜 상상력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내 주변 지인 자녀들이 제대로 걷지를 못해 그 부모들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온 걸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대학 선배 아들의 돌잔치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걷기는커녕 제대로 기지도 못해 참석한 사람들 모두 걱정한 적이 있다. 그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는 선천성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선배 부부는 평생을 힘들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 아들은 남자답게 아주 잘 생기고 건강한 것처럼 보였지만 자폐증으로 온 가족이 힘들게 살고 있음을 나는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아이의 발달과정에 견주어 볼 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손자에 대한 걱정은 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승우가 돌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걷지 못하자, 머릿속은 더욱 복잡하여 생각하기조차 힘든 나쁜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손자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지 알 수 없다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그 무렵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보고 영유아기의 아이가 걷기 시작하는 개월 수를 확인해 봤더니 보통 돌 전후부터 생후 16개월 사이에 걸으면 정상이고 했다. 그런데 우리 손자는 생후 15개월째 접어들어 곧 16개월이 되는데도 침대나 소파를 잡고 겨우 일어서서 조금씩 발을 뗄 뿐 걸을 생각을 안 하니 답답할 뿐이었다.

  이대로 걷질 못한다면 아들 부부는 어떻게 될까? 만에 하나 뇌성마비가 된 선배의 아들처럼 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별의별 잡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여동생 손자는 승우보다 4개월 빨리 태어났는데 10개월째부터 걸어 다녔다고, 돌 무렵에는 아예 뛰어다녔다는 말을 듣고부터서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그러던 중 집에 들른 아들 부부에게 손자가 아직도 걷질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눈치였다. 얼마 후 며느리로부터 자기 집 근처 대학병원에 손자 진료 예약을 해놨다는 말을 듣고 다소 걱정이 덜했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나서 며느리로부터 손자가 곧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병원 예약을 취소할 생각이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이미 예약이 되어있으니 무조건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며느리를 설득했다. 예약된 날 병원 진료 결과는 너무나 황당했다. 담당 의사는 진찰 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며느리가 묻는 말에 아무런 답변조차 해주지 않고 그냥 막연히 기다리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돌려보냈단다. 의사 말대로라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영 가시지 않았다. 아들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아들네랑 수시로 영상통화를 통해 손자의 걷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승우는 좀처럼 걸으려 하지 않았다. 예전보다 좀 세련된 모습으로 양 무릎을 세워 기어 다니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정확히 생후 16개월이 되는 날을 일주일 남겨놓고 며느리가 카카오톡으로 동영상을 보내왔다. 승우가 혼자서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서 조금씩 걷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똑같은 내용의 그 동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보고 또 보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감사기도를 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내도 동영상을 보고 싶다면서 내 곁으로 왔을 때 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른 눈물을 닦았지만 격양된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안도한다는 것이 이런 마음일까? 이제 손자가 장애인이 될 확률은 없을 것이라면서 스스로 위로했다.

  그 뒤 손자가 제대로 걷기 시작한 건 정확히 생후 16개월 하고도 일주일이 더 지날 무렵이다. 저렇게 잘 걸으면서 그동안 걷지 않았던 건 무슨 심보일까? 만감이 교차하던 그 날 저녁 아내랑 둘이서 막걸리 한 잔으로 쌓였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다.

  아내는, 그동안 엎드려 있거나 기어만 다니다가 일어서서 걸은 새로운 세상은 승우를 빠르게 성장시켜 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아내도 걱정이 컸던 것은 내 마음과 별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울 손자가 늦게나마, 그것도 유아가 정상적으로 걷기 시작한다는 범주의 마지막 16개월째 접어들어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나와 같이 마음 졸이다 끝내 걷는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미안하고 모든 게 고마울 뿐이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봤던 세상이 걷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달라졌음을 승우는 느끼고 있을까? 어쩌면 좀 더 빨리 일어나 걷지 않았던 걸 내심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손자가 제때 걷질 못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 비록 기우(杞憂)일지라도 이제 내 마음은 여유가 생겼다고 하면, 우리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지나친 이기주의의 발로일까? 그동안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어르신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부부의 약 10%가량이 자연적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단다. 아이의 생산을 관장하는 삼신할머니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비록 태어난다 해도 아이의 10% 정도는 기형아라고 하니 그 진위를 떠나 섬뜩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임신하면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축하 인사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이목구비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손가락 발가락은 5개씩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임신은 새 생명 탄생의 시작이다. 뒤이어 출산과 양육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생명체가 되기까지 부모는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이미 어른이 된 우리 아들딸이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손자의 걷는 모습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많이 달라졌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장애를 갖게 된 주변의 수많은 장애인에게 따뜻한 사랑의 눈길과 함께 보듬어 안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눠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땐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팔다리를 잃은 상이군경 아저씨들이 깡통을 차고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돈도 아닌 밥을 구걸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당시 내 어린 눈에 비친 그런 모습이 얼마나 추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 상이군경 아저씨들이 무섭고, 나쁜 사람으로 생각되곤 하였다. 길거리에서 상이군경 아저씨들과 마주칠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으니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받들어 모시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었다. 중앙정부에 보훈처가 있어 그분들을 보호하고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 예우를 하고 있지만, 당시엔 속된 말로 팔다리가 없는 ’×이란 말을 듣고 천덕꾸러기 삶을 살아야만 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몸을 다친 그분들에게 예우는커녕 사회에서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었으니 그분들의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정부 차원에서 그분들에게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국가유공자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사건·사고, 또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얻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우리 모두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야말로 천국이요 극락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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