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고기
최승리 (시 쓰는 필명)
칼바람이 불면 저수지마다 은빛 물고기가
사르르 얼어간다
꼬리 치며 폴짝, 뛰어오르진 않지만
은빛 몸을 치장하며
납작하게 드러누웠다
그 모습이 어찌나
거대한지 던져 놓은 돌멩이조차도
감히 반으로 가르지 못했다
바라만 봐도
가슴 깊이 겨울 들판이 보이고
지느러미 쫙, 펴진 날씬한 몸매가
서늘하다
눈동자마다 시린 빛이 스며들었다
그 은빛 물고기를 맨손으로
만지는 순간,
지느러미가 차갑게 고개를 숙인다
무엇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억누르고 있는가
어깨가 무겁다
은빛 물고기의 눈빛이 심각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이를 악물고 있다
슬프고 서늘한 기운이 내 목덜미를 덮친다
시린 욕망의 끝에 은빛 물고기가 녹아내리고 있다
천천히 제 몸을 얼큰하게 요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