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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19 12:12
가을과 겨울의 만남
 글쓴이 : 김춘자
조회 : 5,793   추천 : 0  
 

가을과 겨울의 만남


                                                      김애경

  만남의 설래임은 언제나 마음을 기쁘게 하며 어쩌면 아려오는 그리움으로 밤 잠을 설치게 할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계절의 문턱에 발을 올리고 서면 살며시 무언가에 이끌려 문을 열어보고 싶은 잔잔한 충동이 인다. 계절의 친절함으로 사계를 만나보면 모든 것을 사랑하고픈 열정이 인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하고 얽힌 것을 풀어 헤치며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사람마다 마주하는 것이 다르듯이 나는 유난히 빛바랜 가을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다. 화려한 꽃 축제의 봄을 지나 싱그러운 그늘의 진녹색의 여름을 넘어 바람의 손짓에 춤을 추는 은빛물결 억새의 유혹은 차마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아름다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남편 향해 난 가을 산에 오르고 싶다는 것을 투정부려 보기도 한다. 그럼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가을 구경을 가기도 한다.


 얼마 전 남편이 문학행사로 강원도 태백으로 문인들과 가을을 만끽하며 기차로 여행을 하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가을을 좋아하는 당신만 두고 아름다운 가을을 나 혼자만 보니 미안해. 당신과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꼭 기차타고 갑시다.”


 전화를 받고도 알았다며 잘 구경하고 오라고는 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선 자꾸 눈물이 흘러나온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꾸 투정과 서러움만 늘어 간다더니 주책 스럽게 웬 눈물이 나오는지....... 


 올해도 이 가을이 다 지나가나 보다 한탄하며 마당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감잎을 쓸며 애꿋은 빗자루만 화난 나의 손놀림에 휘청거리고 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감잎을 태운다. 자연의 향기를 콜록거리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연기를 보며 휴! 한숨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높고 푸른 하늘이 내 눈 안에 가득히 채워진다. 그리고 옷깃을 여미는 스산한 늦가을의 바람이 허전한 나의 마음을 잠재우려 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부산한 아침준비로 남편, 자녀 다 나간 텅 빈 거실에 한 잔의 커피향기에 취하려 하는 순간! 따르릉 요란한 전화벨을 찾아 헤맨다. 바쁘게 움직이다 나도 몰래 던져 놓은 전화기가 소파 한 구석에 쳐 박혀 있다. 이미 전화는 끊겼다. 하지만 분명 가을의 외로움을 위로해줄 사람은 현우 엄마다. 다이얼을 눌렀다.



  “ 가정주부 뭐 해유! 전화도 안받고”

  “가정주부 외로운 가을에 죽었어”

  “그래서 내-가 있-잖-아. 빨리 준비해요. 진이 엄마랑 유나엄마랑 몇 명이 늦긴 했어도 가을을 만끽 할 수 있는 지리산에 갈 거래요. 우리도 따라 갑시다.”

  “예쁜 단풍도 없을 텐데.......”

  “그래서 안 간 다구요.”

  “알았어. 30분 내로 준비할게”

 

 무엇에 홀린 기분이다. 허우적거리다시피 부지런히 화장을 했다. 대충이지만 여자의 윤각이 나온듯하다. 맘에 들게 예쁘게 정성들여 한 화장은 아니지만 나의 모습이 미워 보이진 안는다. 혼자만의 착각을 가끔은 하지만 내가 나를 예뻐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예뻐해 주랴!

 여자 나이 불혹이면 자신의 정신과 외모에 책임 질 줄 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과 우연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관계 속에 나의 기억에 남아 서로를 위로해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나에게 현우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언제라도 내가 필요로 할 때에 내 옆에 서 있다. 지란지교의 고귀한 정신적인 지우이다.

 난 어리광을 잘 받아주는 나 보다 나이 든 언니들을 좋아 한다. 왜냐하면 나의 부족함을 세월의 연륜으로 다 보듬어 주고 지혜의 조언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맘 좋은 언니들과 계절의 아쉬움의 끝자락을 잡고, 땅 속 깊이 자신의 몸을 받쳐 봄의 아름다움으로 거듭나기 위한 잎 새의 바스락거림은 내 마음을 더 가라앉게 만들고 있다. 내 빈 가슴을 닮은 이런 가을의 아쉬움을 어쩜 난 즐기고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철지난 가을의 헤어짐을 만끽하러 가는 이 기분은 내가 지금 날개 달고 비상하는 가을 철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험준한 지리산의 고갯길을 네발의 엔진을 달고 자동차는 숨 헐떡임도 없이 육중한 아줌마들을 포근히 안고 잘도 올라간다. 안토시안 가을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경탄의 아우성 대신 다 져간 잎사귀의 잔재가 차가이 불어오는 산사의 바람과 함께 손끝으로 스쳐간다. 지리산 중턱의 성삼재주차장에 우린 내려 노고단의 정상을 앞에 두고 2시간정도를 열심히 올라가야한다. 춥다고 두툼히 입고 간 외투의 투박함이 무색하게 다들 땀으로 젖어 하나둘 벗어 들고 오른다.


 웰 빙 건강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힘차게 내려온다. 사람이 늙으면 힘이 입으로 가고 젊으면 힘이 아래로 간다더니 청춘들이시라 발이 시립지도 않나보다. 그들의 웃음 띤 얼굴들은 분명 무언가의 감탄함을 보았을 듯 한 설래임을 갖게 한다. 그리고 해발 1,800미터의 노고단의 정경을 앞에 두고 우린 감탄사를 만발하고 말았다.


 하늘과 산이 맞닫는 지리산의 설경은 내 태어나 처음 보는 황홀함으로 호흡이 가빠 일행을 뒤로 한 채 나도 몰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일행의 부름이 없었다면 단숨에 오르겠다는 집념만이 나를 압도했을 것이다.

 가을과 겨울의 만남, 아 ! 이 기분을 누리려고 험준한 정상을 향해 고행과도 같은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바로 이러 하겠지!  하늘은 분명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건만 산은 정녕 겨울이란다. 하늘 향한 가지마다 하얗고 빛나는 유리 옷을 걸쳐 입고 청솔의 머리마다 하얀 눈꽃을 이고 있다. 뜨거워 아름다운 눈꽃이 다지기를 아쉬운 듯 하늘엔 불타는 질투의 화신인 해를 대신해 보름달이 설경을 지키고 있다.

 내가 오른 이곳에 나의 존재를 알리듯이 야-호! 하며 목청껏 소리쳤다. 따분하고 답답했던 마음 다 버리고, 내가 나를 용서 하지 못했던 일 다 잊고, 상대를 관용으로 마주하지 못함을 사랑으로 마음을 넓히고자 가슴을 활짝 열었다. 마주한 설경의 아름다운 메아리가 내 가슴에 들어온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목을 타고 가슴으로 쏴 하고 들어오자 기분이 상쾌하다. 코끝도 찡하고 차가움으로 아려온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눈과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신 신의 위대한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500원 동전을 하나 넣고 망원경을 통해 먼 산의 설경을 내 눈 안에 다 넣었다. 실가지 마디마디 솜털 같은 서리발이 잎 떨어진 나무들을 위로하듯 따뜻하게 감싸 안고 눈꽃으로 서로의 사랑을 승화시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있는 듯 하다. 과히 눈이 부셔 마주하지 못할 너의 자태에 난 반하고 말았어!


 만남이 있은 후엔 헤어짐이 기다리듯 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향의 발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

 때 이른 겨울! 너와 나의 만남은 참으로 날 떠난 가을의 빈 자리를 다 채워줄 것 같아.

 널 뒤로 한 채 한 참을 내려와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간 너였지만 하얀 그 눈꽃은 지금도 내 머리 속 환상에서 내 꿈속에서 나를 즐겁게 해주고 있지.

 그리고 현실의 행복을 더 즐거워해야 함을 배우게 해준 계절의 아름다운 친절함에 난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내일 아침엔 즐거움으로 감잎을 쓸어야겠다. 곧 나에게 다가올 겨울 손님을 친절하게 만날 준비를 하기 위해서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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