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올케에게
수필가 김애경(춘자)
“딩동-딩동-한진택배입니다.”
배달된 커다란 박스 안에는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나물들, 무, 고구마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까지 가을의 온갖 절실이 푸짐히도 정성스레 담겨있다. 그리고 박스 속에는 하이얀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듯한 막내 여조카의 행복의 메시지 청첩장이 다소곳이 나를 초대하고 있었다.
정말 눈부신 가을 만큼 아름답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 큰오빠께 불혹의 나이의 이 막내가 처음으로 편지를 써 보는 것 같습니다.
오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건강해 주세요. 10월 3일 결혼식날, 신부의 눈부신 화사함보다 건강함을 찾다 든든하게 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더 화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무서울 것이 없어보이던 패기는 어디가고 손과 머리의 잦은 흔들림은 자꾸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왔습니다. 차마 이 좋은 날 눈물이 날까봐 전 오빠의 큰 두눈을 바로 볼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빠의 따뜻한 두손의 온기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2년전 전주예수병원 308호실! 이렇다할 병명도 모른체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만 했던 그날. 특수치료로 인해 삭발하여버린 머리에 뚱뚱 부어오른 모습에 난 오빠의 손을 잡고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던 일 기억하시오. 그리고 오빠의 짧은 위로의 한마디,
“바보 같은 놈.”
그렇게 이유 없이 아파야 했던 사실을 오빠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예견하고 계심을 우린 뒤늦게야 알게 되었지만, 도움을 줄 수 없음이 언제나 가슴 아프게 한답니다.
바로 그것은! 월남전으로 인한 후유증 “고엽제”의 고통이 온가족의 슬픔이란 것을. 제가 6살 이던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때 오빠가 월남에서 가지고 온 푸짐한 선물더미에 그저 즐거웠던 기억들. 7남매의 어려운 가정의 장남으로 집안을 도울 목적으로 자원하여 비둘기 부대의 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여 가족을 위해 더 크게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머나먼 쏭바강가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험하고 험한 정글 속에서 후에 고엽제가 있을 고통도 모른 체 많은 벌레와 모기를 막아주는 고엽제를 몸에 바르고 샤워하듯 뿌리기도 하였다니......
그리고 그 귀하고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돈은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발전이란 명목으로 그 당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비용으로 반을 떼어내고 나머지는 고국의 가족에게로 전달되었다면서요. 그래서 부모님은 그 돈을 오빠의 목숨이라 여기시고 단 한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차곡히 넣어두셨다는 이야기도. 큰아들을 머나먼 이국 땅에 보내신 후 가슴저린 아픔과 한스런 정으로 한동안 집안 사립문 밖 허공을 멍하니 주시하다 들어오곤 하였고 밤마다 호롱불 좁은 공간 오두막 초가는 나지막한 한숨으로 뜬눈으로 지새우셨다는 하루도 편히 두다리 뻗고 못 주무셨다는 얘기에 오빠는 얼마나 표현 못한 정한으로 가슴을 짓누르고 사셨겠어요. 그 후 우리 집은 오빠의 고통의 산물로 인해 하이얀 스레트 집을 지어 오빠가 소속되어 참전했던 비둘기 부대의 평화를 상징했던 “비둘기”를 양쪽 지붕에 기념물로 세워 우리 집은 평화의 집이라 불리움에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과 부상 없이 돌아와 온 가족의 웃음이 되어준 것은 오빠의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음을 다 알고 있답니다.
오빠! 감사합니다. 우리 집 벽 한가운데는 언제나 커다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어요. 지금은 없어져 조금은 아쉬워져요. 오빠! 그 액자 속의 사진들 다시 걸어 둘 수 없나요?
오빠는 베트남에서도 전쟁의 고아들을 많이 사랑해서인지 그들의 순진무구함과 콩까이 아오자이의 단아한 아가씨들과의 높고 푸른 하늘 정극을 뒤로하고 지은 녹색 야자나무의 이국적인 풍경의 풍요로움은 사직 속 오랜 고풍처럼 눈앞에 아름답게 아른거려요.
어느 땐가 저희 집 작은 행사때 김서방이 베트남 여행때 사온 아오자이를 입고 있던 저의 모습에서 아마도 오빠의 마음은 잠시 그 사진 속의 아름다움을 잠시 보고 오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좋은 기억 오래 오래 간직하고 사셨으면 해요. 얼마전 김서방과 함께 뮤지컬 “블루 사이공”을 관람했어요. 주인공 김상사의 고통을 보며 전 공연 내내 오빠를 주인공이 되게 했어요. 그리고 클라이맥스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낼 수밖에 없었답니다. 여러 번의 대수술로 인해 지금은 큰 일도 할 수 없고 약으로 지탱 할 수밖에 없는 오빠의 애처로운 모습이지만 매일의 고통이 서러움의 애가로 흐르지만 그래도 그 모습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지요. 또한 시간은 약이라 했지요. 계절의 아름다움을 숨길 수 없는 신이 주신 선물이에요. 황금빛 들녘 노을을 등에 지고 경운기 터덜거리며 일손을 마친 생기 있는 지난 세월의 오빠의 모습 그립습니다. 커다란 밀짚모자에 마스크 얼굴 가린 모습으로 과수원 사과나무 농약 치며 다가올 결실의 열매를 위해 공력 드리는 오빠 모습 그립니다. 언제나 마루문을 활짝 열고 “어서 오너라.” 팔 벌리는 친정아버지 같은 그늘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장철이면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참깨, 들깨, 단감 모두 보내 주지 않아도 내 친정갈 때 환한 웃음으로 반겨줄 부모 역할 끝없이 채우시길 저의 작은 소망으로 남고 싶습니다.
오빠! 저 여고시절 수학여행 며칠 앞두고 어머니, 아버지 서울에 가셨고 여행비를 못내 쩔쩔 맬 때, 꾸깃한 돈 제손에 쥐어주며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하다며 잘 다녀 오라시던 오빠의 모습 지금도 잊지 않고 사는 것을 아시는지요? 넉넉히 주지 못함 왜 제가 모르겠어요. 5명의 조카들이 초롱초롱 오빠 주위에 사랑스럽게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요. 제가 더 죄송하였답니다.
제가 6살 때 오빠, 언니 신행길 친정나들이에 가운데 손을 잡고 엄동설한 하얀 들길을 따스하게 동행했던 추억 기억하시나요. 철없지만 귀엽지 않았나요, 언제나 자식들 뒷바라지도 힘드실 텐데 막내 동생까지 챙겨주심 더없이 감사합니다.
내년 초에 ‘뮤지컬 블루 사이공’이 다시 재공연은 한다고 하네요 오빠, 언니 두분 옛날처럼 다시 가운데 두손잡고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병원에 누워 있지 않기를 소망 중에 소망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