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불어온다 】
박 민 석
바람이 분다
더 넓은 시베리아 북벽 빙산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살갗에 부딪기는 차가움에 지그시 눈 감고
양껏 두 팔 벌려 나를 안긴다
썩은 육신의 고뇌와 타는듯한 목마름
그 속에 비릿해진 내장을 둘둘 말아
바람 꼬리에 실어 보낸다
어디서 어디로 가고
어디로 가서 어디로 올까!
바람이 스쳐 간 조용한 길섶에는
또, 다른 작은 생명이 잉태하고
살을 찌워 성장하며 바람을 기다린다
전주(前主)의 길을 답습하듯
세상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바람을 기다리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벌레처럼
똑같은 길을 걷는다
썩은 고목에서 새싹이 움트는
잔잔한 희열을 본 적 있는가
분명히 다름의 논제를 펼쳐 보이며 성장하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기에
또다시 바람이 불어오면
다름의 철학은 소멸하고 슬픈 현실에
무릎 꿇고 말아야 하는 비천한 몸뚱어리
또 다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온다
깨진 두개골 사이로 바람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