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치적하게 내리던 날 밤,
말없이 둘은 길을 걸었습니다.
소년은 지쳐보였고,
소녀는 두려웠습니다.
어둡고 치적한 길, 기어이,
그 위에서 소년은,
"그동안 고마웠다."
소녀는 주저앉았습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힘들게, 입을 떼어,
"……어째서……?"
소녀는 길바닥만을 바라봅니다.
가을이 되게하는 어두운 빗방울,
시간을 잊게하는 주황빛 가로등…….
소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얼굴을, 그 마음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일도 볼 수 있잖아."
"그건 너가 아닌걸. 내가 아는 네가…아냐."
이윽고, 주어진 시간의 끝.
소년은 먼저 사라졌습니다.
소녀는 멍하니, 그저 멍하니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고.
다시 걸을 수 없겠죠.
소녀의 길이 아니었기에,
감히 더이상 허락받을 수 없기에.
우산을 쓰지도 않은채,
소녀는 치적히 돌아갑니다.
결국 망각하게 될 이 길을 천천히,
하나하나 조금 더 기억하려 애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