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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22 22:31
치적한 밤 빗길 그 위에서
 글쓴이 : 김보경
조회 : 4,531   추천 : 0  

비가 치적하게 내리던 날 밤,

말없이 둘은 길을 걸었습니다.

 

소년은 지쳐보였고,

소녀는 두려웠습니다.

 

어둡고 치적한 길, 기어이,

그 위에서 소년은,

"그동안 고마웠다."

소녀는 주저앉았습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힘들게, 입을 떼어,

"……어째서……?"

 

소녀는 길바닥만을 바라봅니다.

가을이 되게하는 어두운 빗방울,

시간을 잊게하는 주황빛 가로등…….

 

소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얼굴을, 그 마음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일도 볼 수 있잖아."

"그건 너가 아닌걸. 내가 아는 네가…아냐."

 

이윽고, 주어진 시간의 끝.

소년은 먼저 사라졌습니다.

소녀는 멍하니, 그저 멍하니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고.

 

다시 걸을 수 없겠죠.

소녀의 길이 아니었기에,

감히 더이상 허락받을 수 없기에.

 

우산을 쓰지도 않은채,

소녀는 치적히 돌아갑니다.

결국 망각하게 될 이 길을 천천히,

하나하나 조금 더 기억하려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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