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거든요.”…잊지 못하는 문장
2002년이 며칠 남지 않았던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기는 이대역 지하 2층까지 뚫고 들어왔다. 승강장 안 의자에 앉아있었던 나는, 언론사 입사 시험에 탈락했다는 이메일을 조금 전 확인했다. 누가 나를 치기라도 하면 죽일 듯 달려들 기세였다. 그런데 누가 나를 쳤다.
‘뭐야. 이건.’
올려다보니 젊은 여자였다. 내가 노려보는데도 그 여자는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요.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나요?”
“…”
질문이 황당했다. 제발 꺼져주기만 바랐다.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기요.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건가요?”
“…”
욕이 나오려 했다.
‘이년이 처돌았나.’
무시하려다가 이상해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죠?”
“이쪽요.”
그 여자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지하철역 출구들 정보가 표기된 안내 표지판이었다. 그녀가 짚은 곳은 2번 출구 쪽이었다.
짜증이 났지만,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이 글씨가 안 보이세요?”
“…”
내 목소리에서 표독스러움이 묻어났다. 가뜩이나 열받아 미치겠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황당한 질문을 던지는 것 아닌가. 기분은 그녀가 어깨를 쳤을 때부터 상했다. 그런데 한 문장이 내 귀로 들어왔다. 평생 잊지 못하는 문장이다.
“네, 안 보여요. 제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거든요.”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시력을 잃어가다니. 실명을 말하는 건가. 눈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잘 안 보여서 저한테 물어보신 건가요?”
내 태도가 공손해졌다. 어르신한테 여쭙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거의 안 보여요. 제가 2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요. 저는 흑백으로 큰 덩어리, 작은 덩어리 이렇게만 볼 수 있거든요.”
이 여자는 세워 놓는 안내 표지판과 나를 큰 덩어리와 작은 덩어리로 인식한 것이다.
뒤통수를 가격 당한 것 같았다. 앳된 그녀의 입에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내 또래의 그녀는 인생에서 ‘큰일’을 겪고 있음에도 흔들림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언론사 시험 떨어졌다고 세상 다 잃은 것처럼 행동했다. 미안했다. 그러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원망도 들었다.
‘안 그래도 시험 떨어져서 비참한데, 너까지 나타나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냐. 난 언론사에 들어갈 실력도 안 되는 데다 인성(人性)까지 문제가 있다는 거냐.’
마음이 복잡했지만 어쨌든 난 그녀를 돕기로 했다. 2번 출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역사 1층까지 같이 가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걸어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따뜻한’ 침묵이다. 1층 출구로 이어지는 곳에 이르렀다. 조심히 가라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했다.
‘잘 가요. 미안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인생을 담대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고 곧 사라졌다.
‘이 글씨가 안 보이세요?’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말이, 하필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를 줄이야.
어떤 마음이어야 시련이 삶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도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과연 어떤 마음이어야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은 힘들 때마다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녀는 또렷하다. 해상도 높은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보건의료 전문기자 시절, 대학병원 안과 망막센터를 취재할 때마다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그녀와의 드라마틱(dramatic)한 재회를 상상할 때가 꽤 있었다.
그녀가 내 삶에 끼친 영향은 컸다. 나는, 내 이기심의 민낯을 봤다. 다정하고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만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를 통해 이런 사실과 마주했을 때 불편했다.
그날은 마음에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었다. 나의 다정함이 품고 있는 온기는 사라진 상태였다. 내 마음은 빙하였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의 온도 차를 줄여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결심한 건 또 있다.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것. 그녀의 삶 한 단면을 통해 여왕을 봤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여왕의 모습을.
인생에서 어떻게 꽃길만 걸을 수 있겠는가. 꽃길이 아닌 곳에서도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이 품격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23년이 흘렀다. 최근 몇십 년 사이 우리나라 의술의 발전 속도는 빨랐기에 그녀가 예전의 시력을 거의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는 젊고 건강했으니 치료 경과도 좋을 거라고. 그래서 나를 TV 뉴스에서 보고 알아보지 않았을까.
‘저 싸가지, 기자가 됐네.’
이렇게 욕해도 좋으니 시력이 남아있었으면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깨달음이나 영적인 자극을 주는 대상은 ‘완벽한’ 타인인 경우가 많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 우연히 접한 영화 속 대사 한마디에서 삶을 다시 살아도 깨우치기 힘든 진리, 진실을 마주한다.
오래전, 디지털카메라 TV 광고에 나왔던 문장이 떠오른다.
‘인생에서 멋진 사진들은 처음 만난 낯선 이가 찍어준 것들이다.’
-(끝)-